인물도감 : 고사테

인스타 알고리즘 덕에 한 강연을 알게 됐다. 좋아하는 것만 팔로잉 해놓으면 좋은게, 내가 확실히 타겟이 되는 피드만 정확하게 뜬다. ‘한옥, 근대 건축, 아카이빙, 기록, 수집, 전통.’ 강연 키워드를 보자마자 무지성으로 바로 예매했다. 예매 후에 강연 정보를 천천히 살피다가 (뭔가 선후가 바뀐 것 같은 것은 착각이다) 혼자 소리질렀다. 강연자분 배무이 목수님이셨잖아?!?!? (positive) 

인물도감
강동수 목수

목수님을 알게 된 건 어느 매거진 인터뷰에서였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한옥을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인상적이었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그가 그 과정을 아카이빙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간에 기록하고 수집하는 사람을 보면 눈길이 간다. 그들이 겪어내는 그 모든 과정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당시의 생각과 느낌을 언어화해서 적확하게 표현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도 나누는 거니까. 그 안에서 대상을 분명하게 위치시키고 들여다본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근대한옥은 아직 연구도 많이 되어있지 않고, 양식도 지역과 시기마다 많이 다르다고 한다. 이때문에 강동수 목수님은 일 년에 세 채 정도 복원 작업을 하는데, 하나하나 뜯어보고 연구해가면서 그 과정을 기록하는 거라고 했다. 강동수 목수님은 한옥이라는 대상을 두고 그렇게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원래 알던 배무이 목수님. 이번 강연은 한옥의 전통 벽지를 복원하는 ‘고사테’의 대표로서 강연을 하신다. 겹겹이 쌓여있던 한옥의 고벽지들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을 하신다고. 텍스타일 디자인을 전공한 아내분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이 참 재밌는 것 같다. 융님의 ‘내가 만난 사람들이 내 세계를 이룬다’는 말을 좋아하는데, 두 분도 각자의 세계가 만나 그 세계가 확장된 거니까.

 

부록) 제가 이해하는 근대한옥 연구의 재밌는 포인트는요….

나는 <모던의 시대 우리집>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근대한옥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다. 어어엄청나게 애정하는 책인데 이 책을 떠올리면 마치 소설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근대라는 시대의 정경이 머릿 속에 펼쳐진다고나 할까. 건축에 대해 문외한인 입장에서, 이 책에 나오는 근대건축물을 보고 처음엔 괴랄하다고 생각했다. ‘고딕양식이 더해진 한옥 성당’. 이 대체 무슨 말인가. 괴식 같은 이름이다. 생긴 것도 켄타우로스 같다. 

근데 에세이를 읽다보면, 기독교를 포교하러 온 선교사들이 (건축가 역할까지 겸한다. 이 시대의 선교사들에게는 이게 기본 소양이었던 걸까..(!)) 조선에 걸맞게 성당을 지으려고 분투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미 머릿 속에는 고딕식 성당이 있을 텐데, 이걸 어떻게든 한옥이라는 건축물과 융합해보려고 하는 거다. 이걸 짓는 당시 선교사의 고뇌와 번민을 보는 건 그들에겐 미안하지만 겁나 재밌었다. 

설계하는 사람도, 실제로 짓는 사람도, 다닐 사람도 모두가 처음 보는 건축물. 모든게 새롭고, 그래서 서툴고, 기이하기까지 한 시대와 그 결과물. 그 날것의 에너지를 상상하다보니 근대건축이 재밌고 흥미로웠다.

근대한옥은 아직 연구도 많이 되어있지 않고, 양식도 지역과 시기마다 많이 다르다고 한다. 이때문에 강동수 목수님은 일 년에 세 채 정도 복원 작업을 하는데, 하나하나 뜯어보고 연구해가면서 그 과정을 기록하는 거라고 했다.

 

고사테(古史帖)에서 배운
일과 삶, 공간의 오리지널리티

이 강연을 한 마디로 엮는다면 ‘오리지널리티’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목수님은 일과 삶에서 자기에게 맞는 독창적인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한국 고벽지를 발굴한다는 것도 한국의 오리지널리티가 담긴 문화양식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고. 느낀 점을 세 가지로 엮어봤다. 

WORK & LIFE | 선순환하는 일의 구조

  • 우선은 뜻밖에도 일의 구조에서 인사이트를 얻은 지점이 있었다. 본업인 한옥 복원을 하다 보면 계속해서 벽지를 만날 수밖에 없으니, 벽지를 아카이빙하고 복원하는 고사테 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생긴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벽지를 아카이빙하고 복원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보니 그 일 자체가 공공의 유익이 되기도 하는데, 상품판매로까지 이어진다. 상품판매를 하다보면 그 돈으로 또 벽지를 아카이빙하고 연구할 수 있는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기도 하는 거고. 

본인이 좋아하는 일과 공공의 가치가 될 수 있는 일, 경제적인 가치가 있는 일까지. 모든 게 어우러지는 스위트 스팟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동기가 충분하다. 나도 이런 구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음. 

  • 한옥을 복원할 때는 숙소가 아니라 캐러밴 생활을 하신다고 한다. 혼자가 아니라 아내와 두 아이까지 함께! 물론 실제로 생활하면서 많은 고충도 있을 거고, 내가 낭만화해서 보는 부분도 있겠지만 캐러밴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자유로워보였다. 내가 한 장소에 얽매여 있는 걸 답답해하는 편이라 더 그렇게 느꼈던 듯. 

벽지를 복원하면서 아카이빙한 기록으로 전시까지 여셨다고 하는데, 꼭 물리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한옥 복원’이라는 주제로 여러 세계에서 접점을 만들며 확장해나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내가 일로서 지향하는 바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ARCHIVE & HISTORY | 덧방된 벽지 레이어 속 한국의 생활사

  • 벽지를 통해서 국내외의 생활사와 세계사를 읽어낼 수 있다는 지점도 흥미로웠다. 벽지는 생각보다 굉장히 한국적인 문화라고 한다. 한옥이 내력벽이 아니고 흙으로 미장을 하다보니 벽지만 뜯어내기가 곤란해서 덧방을 하게 됐다고. 겨울에는 추운데 마침 단열재의 역할도 해서 이 문화가 굳어졌다고 한다. 흥미로운게 조선시대에는 방마다 세입자를 들이는 문화가 있었는데, 각 방마다 자신의 취향대로 벽지를 꾸몄다고도. 집마다, 방마다 벽지가 다르다보니 수백 가지의 벽지 패턴을 아카이빙 할 수 있으셨다고도 했다. 

이 지점이 특히 두드러지는게, 적산가옥의 예시였다. 원래의 일본식 가옥에는 벽지문화가 없는데 만약 적산가옥에 벽지가 있다면 한국화된 거라고 한다. 구조물은 똑같아도 벽지의 유무가 어느나라의 생활양식이 녹아있느냐가 결정된다는 게 흥미로웠음.

  • 벽지의 패턴에 생활사와 세계사가 녹아있는 것도 재밌는 부분. 시대마다 유행하는 도안이 있는데 개화기 이후에 화려한 수입벽지가 한창 인기를 끌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어떤 도안은 세계적으로 유행을 해서 누가 원본인지 알 수 없게 서로가 서로를 카피하며 다양한 장소와 시기에서 발견되기도 한다고. 지금처럼 빠르거나 동시성까지 있진 않았겠지만, ‘세계적’인 범위에서 유행이 있었다는 게 흥미로웠다. 

INSIGHT & LOCALITY | 오리지널리티라는 한 끗 차이

  • 이 벽지를 사는 사람들을 인터뷰하시는데, 그중 한의원 사례가 흥미로웠다. 원장님께서 돌아가신 할머니를 애정하셔서 한의원에 할머니 유품도 많이 두시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할머니처럼 포근한 분위기를 원하셨다고 했다. 원래는 유럽 빈티지 벽지도 고려해보고, 사군자 느낌의 동양적인 빈티지 벽지도 고려해봤는데 둘 다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던 끝에 고사테의 벽지를 고르게 된 건, 동서양의 빈티지가 어우러지는 느낌 때문이었다고. 

목수님이 마지막에 말씀하신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도 맞물려 있는데, 어린 나이에 한옥 목수가 된 건 유럽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고 한다. 18살 때 자퇴 후에 세계여행을 떠나서 고성을 수리하는 일을 하셨다고. 그때의 경험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오래된 건물을 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확실히 한국에는 오래된 것, 특히 오래된 주택을 볼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오래된 것이 지금에 어떻게 어우러지고 지금에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레퍼런스를 알고 있지 못한다. 신축에 대한 욕망도 그런 레퍼런스가 별로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적인 빈티지 벽지라는 말을 들으면 생각나는 바가 없다. 일단 벽지가 한국적인 문화였다는 것도 몰랐으니 말이다. 전통적인 문양을 생각하면 실은 벽지의 실제 패턴도 아니었을 막연한 사군자 패턴, 단청의 무언가 이런 것만 떠오르기 마련이다. 실제의 모습이 비어있는 것이다. 실제 벽지를 복원하면서 시대상의 변화와 흐름이 반영된 진짜 한국적인 빈티지 벽지를 알린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이미 세계사적으로 벽지에 다양한 타문화권의 문양이 섞여있다는 말을 했으니, ‘온전히’ 한국적인 패턴이 있다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원래 고유한 문화와 외부적인 문화가 섞여 진짜로 쓰고 있던 한국의 패턴들이 담긴 것들은 한끗 차이라도 외부에서 가져온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묘하게 동서양의 느낌이 섞여 묘하게 이곳에 잘 어울리네라고 생각하는 것도 한끗 차이로 이 한국이라는 장소성과 잘 어울리는 오리지널리티를 갖게 된 걸 테니까. 그런 문화적 발전들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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